전생을 알면 뭐가 달라질까마는...
내 전생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전생을 알려준다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내 전생을 알아봤다.
결과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근"
제갈근(諸葛瑾) 174 ∼ 241
: 손권 막하의 모사. 자는 자유(子喩). 제갈량의 형. 낭야군 남양현 사람. 용모가 좋으며 얼굴이 긴 것이 특징. 효성이 지극했음. 간 할 때는 항상 비유하여 말하고 직접 반대하는 언사를 쓰지 않았다. 난을 피해 강동에 가 있다가 노숙의 천거로 손권을 섬기게 되었다. 동생인 제갈량이 촉을 받들고 있어서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손권으로부터는 절대적 신임을 받고, 주로 유비 측과의 외교 접촉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나 사사로이 만나는 일이라곤 없었다. 215년에 오와 촉이 형주를 둘러싸고 공방전을 되풀이하는 동안 조조가 한중에 침입했다. 이에 유비가 손권에게 강화를 제의하여 회담을 열었을 때 쌍방의 대표로서 만난 것이 제갈 형제였다. 대장군 좌도호에 예주목을 겸했는데 뒤에 병으로 죽고, 아들 각이 대를 이었으나 권력이 너무 커져 죽음을 당했다.
전생에 유명한 사람이었다니, 기뻐해야 하는 걸까?
- 아래는 제갈근에 대한 설명
인정있고 성실하다. 열정있고 진실하다. 이 말은 독실(篤實)하다는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 전란기인 삼국시대에는 뛰어난 용장이나 걸출한 문사가 무척 많았다. 그런 한편으론 갈등을 봉합하고 조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정사나 연의는 이들의 사적에 대해 다소 소홀하지만, 그들의 삶 또한 용장 재사에 못지않게 치열했다. 독실하다는 수식어를 갖다댈 수 있는 인물로는 오나라의 제갈근을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그는 연의에서 이른바 ‘무골호인’으로 등장한다. 유비와 제갈량의 속임수에 빠져 허덕거리다, 시답지 않은 꾀를 내는 심부름꾼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는 대장군이라는 직책을 맡아 오나라 군정을 상당기간 동안 이끌었던 거물이다. 별 볼일없는 문사로 그려지는 그가 이같은 대임을 맡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독실하다는 말로 압축되는 그의 생활철학 때문이다. 정사 <오서>에는 제갈근이 낙양에 유학하고 있던 때에 생모 장씨가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사학자 야마구치 히사카즈는 이를 두고 “당시 지식인 자제의 유학 연령이 대개 15세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형 근이 15세 전후, 동생 량이 8세 정도였던 것 같다. 제갈근은 생모의 상을 잘 치르고, 또 계모도 공손하게 모셨던 것 같다. 이를 통해 근의 온후하고 독실한 사람됨을 알 수 있다. 비록 동생 량의 권모재각(權謀才覺)에는 못미쳤으나, 시기심 많은 오나라 손권이 제갈근을 소중히 여겨 오나라 군정의 대임을 맡긴 것은 수긍이 간다”라고 평했다. 제갈근전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제갈근은 손권과 대화를 하며 풍간(諷諫)할 때 일찍이 강하고 직선적인 말을 한 적이 없고, 풍채를 미미하게 나타내고 뜻을 조잡하게 진술하였으며, 만일 손권의 생각과 부합되지 않는다면 그 내용을 버리고 다른 화제로 들어가서 서서히 다른 일에 기탁하여 서단을 만들고, 같은 종류의 사물을 빌려 손권의 이해를 구했다. 그래서 손권의 마음은 왕왕 풀렸다.” 어찌보면 소신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의도적으로 마찰을 피하면서 일을 만들어 나가는 자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실하다는 것은 성품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공과 사를 엄정하게 구분하는 바른 자세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건안 20년(서기 215년)에 손권은 제갈근을 사자로 보내 유비와 우호관계를 맺게 했다. 그는 동생 제갈량과 함께 공적인 일로 서로 만날 뿐, 공적인 일이 끝나면 사사로이 만나는 일이 없었다. 배주(裵注)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제갈근은 처가 죽었지만 재혼하지 않았고, 총애하는 첩이 아들을 낳았어도 천거하지 않았다. 그의 신중하고 독실한 행동은 모두 이와 같았다.” 제갈근은 68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기름칠을 하지 않은 관에 평상시의 옷으로 염하며, 모든 일은 절검(節儉)의 원칙에 따르도록 유언했다. 죽어서까지 독실한 자세를 유지한 셈이다.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은 당대에 명성이 대단했으며, 손권 또한 그를 매우 귀중하게 생각했다. 요즘 말로 하면 ‘만인이 인정하는 영재’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사람이다. 실제로 제갈각의 재주는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아비인 제갈근은 그를 대단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제갈근은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 각이 가문을 보전하지 못할 자식이라고 말했으며, 이때문에 항상 걱정했다. 똑똑한 아들을 싫어할 아비가 어디있겠는가만은, 독실하게 살아온 제갈근은 남을 뛰어넘는 아들의 재주가 곧 재앙이 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그의 걱정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후에 제갈각은 손준에게 피살됐으며, 집안 또한 결딴났다. 고지식하고 솔직한 성격을 지녔던 우번은 조정에서 쫓겨났을 때 제갈근이 자신을 위해 변호해주는 것을 보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다. “제갈자유는 돈후하고 인자하며 하늘의 법칙을 본받아 만물을 살리고,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 하여 맑게 논의하며 명분을 지키는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없진 않으나, 이만한 역량이 있었기에 파란많은 오나라 조정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제갈근이라는 인물은 ‘독실한’사람들의 범주에 넣어서 볼 것이 아니라, 독실함 그 자체라고 이야기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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